책 소개
◇민족주의는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개인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속성을 지녔다. 민족주의의 이런 속성은 민족주의가 실은 민족과 국가를 낳은 원리에 대한 배반이라는 사실에서 나온다. 민족주의는 가족들을 씨족으로 통합하고, 씨족들을 부족으로 통합하고, 부족들을 민족국가로 통합한 원리와 반대 방향으로 향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민족주의를 경계했다. “민족주의는 소아병이다. 그것은 인류의 홍역이다(Nationalism is an infantile disease. It is the measles of mankind)”라는 아인슈타인의 얘기는 널리 알려졌다.
◇민족주의의 속성이 ‘권력에 대한 욕망’이므로, 민족주의는 외국과의 대결을 먹고 자란다. 외국의 위협이나 전쟁은 민족주의를 극대화하고, 그렇게 극대화된 민족주의는 외국과의 전쟁을 극대화한다. 그리고 전쟁은 시민들의 단결을 필요로 하므로, 전쟁은 정치 지도자들이 대중을 조종하고 통제하는 능력을 늘린다. 자연히, 집권 세력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민족주의를 고취하고 외국에 대해 적대적 태도를 취한다.
차 례
사사(謝辭)
제1장 애국심
제2장 한국의 낭만적 애국심
1. 외족 지배 시기에 대한 외면과 폄하
2. 무력 투쟁의 추앙
3. 문화적 순수성의 추구
4. 낭만적 애국심의 폐해
제3장 동아시아의 근대화
제4장 고종 황제
제5장 이광수
1. 이광수의 지적 자양
2. 이광수의 문학적 공헌
3. 이광수의 정치적 공헌
4. 조선인 지원병 제도
5. 우리 마음속의 춘원
제6장 한일 청구권협정
1. 한일 교섭의 역사
2. 한일 기본조약과 부속 협정
3. 한국 징용공 소송 사건들
4. 대법원 ‘재판 거래’ 의혹
5. 한일 외교 분쟁
6. 외교 분쟁에 대한 한국의 정부의 대응
7. 한국 정부의 군사정보 보호협정 파기
제7장 좋은 이웃이 되는 길
제8장 낭만적 애국심의 순치
후기
참고문헌
색인
충격과 전율이 흐르는 책
책 제목 『낭만적 애국심』은 프랑스 사상가 쥘리앙 방다의 『지식인들의 배반』에 나온 말이다. 이 책은 전체주의와 민족주의의 결합을 경고한 책으로 유명하다. 책의 저자 복거일은 “100년이 지난 지금, 그의 이론을 그대로 현실에 적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것이 지난 암울한 함의들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을 들뜨게 했다”고 책의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전체주의와 민족주의가 결합하여 반일 광란의 시대로 치닫고 있는 한국 사회의 세태를 진단하기 위해 쓰여진 것이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와 이승만학당, 낙성대연구소 소속 연구자들이 펴낸 『반일종족주의』가 한국인들을 마력으로 사로잡고 있는 반일 정서의 뿌리를 캐는 작업이었다면, 복거일의 신작 『낭만적 애국심』은 그 지평을 넓히는 작업이다.
이미 복거일은 2003년에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부제-21세기의 친일문제)라는 문제작을 우리 사회에 내놓은 바 있다. 이 책은 오늘날 친일파로 단죄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일본의 식민통치에 대한 변론서나 다름없었다. 즉, 일본의 식민통치를 민족주의 사관에 젖어 “가혹하고 혹독했다”는 식의 비난이 아니라,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종합적 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그는 일본 식민통치 시기를 인구변화와 경제성장률로 분석한 후 영국 역사학자 리처드 스토리(Richard Storrey)의 견해를 통해 자신의 소신을 밝힌다. “조선에서의 일본의 통치는 조선에 무척 많은 물질적 혜택을 주었고, 분명히 그것은 이전 왕조 정부의 통치보다 효율적이었고 어떤 면들에선 훨씬 덜 자의적이었고 덜 가혹했다”고.
복거일의 신작 『낭만적 애국심』은 충격과 전율이 흐르는 책이다. 우리가 사실과 진실로 알고 있었던 일본 식민통치 시기의 잔상들이 여지없이 부서지고 깨지고 박살이 난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과 진실을 우리에게 속삭인다.
저자 복거일은 한국의 지성인이자 작가로서, 사상가로서 한국 사회에서 들끓고 있는 낭만적 애국심을 지극히 우려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애국심과 민족주의는 비슷한 개념이지만, 많이 다르다. 애국심은 조국에 대해 느씨는 애착, 사랑, 헌신 같은 감정들과 그런 감정들을 공유한 사람과의 연대감으로 정의된다. 반면에 민족주의는 특정 민족국가의 이익을, 특히 영토에 대한 주권을 확보하는 것을 떠받치기 위한 이념이나 운동을 뜻한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애국심은 감정이고, 민족주의는 이념이다.
민족주의의 속성은 '권력에 대한 욕망'
사람들 사이의 차이들을 부각시키고 개인들에게 자기 민족과의 동일시를 강요하므로, 민족주의는 사람을 분열시키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속성을 지녔다. 민족주의의 속성은 한 마디로 ‘권력에 대한 욕망’이다. 이러한 민족주의는 외국과의 대결을 먹고 자란다. 저자 복거일은 한국인들의 민족주의를 부추긴 삼별초의 항쟁, 일본에 대한 무장투쟁을 비판한다. 조선 독립군처럼 비정규전을 펴는 군대는 활동 근거가 있어야 보급을 받고 인원을 보충할 수 있는데, 독립운동을 하자 일본군은 그런 근거를 없애버렸다. 만주의 조선인들은 혹독하고 참혹한 화를 입었고, 활동 근거지가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우리 사회는 모두 무장투쟁을 추앙하고 현실적 대응을 주장한 사람들을 폄하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복거일은 분연히 외친다.
이러한 낭만적 애국심으로 가리워지고 뒤틀린 식민지 시기를 들여다 보면서 복거일은 세 가지를 비판한다.
첫째, 일본의 잘못을 크게 부풀리려는 시도다. 일본이 침략하지 않았다면 우리도 스스로 근대화했을 것인데, 일본이 식민지배를 하는 바람에 그 기회가 사라졌다는 식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둘째, 남의 식민지가 된 조선이 필연적으로 겪어야 했던 구통과 굴욕을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모두 떠넘기는 경우다. 을사조약에 서명한 대신들을 ‘을사 오적’이라고 매도하는 것이 그 대표에 해당한다.
셋째, 낭만적 애국심이 일본에 대한 반감이 되어 우리와 일본 사이의 관계를 어렵게 하는 경우다. 한일청구권협정 등을 제대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복거일은 우리 사회에서 일고 있는 고종 계몽군주 설을 사정없이 비판한다. 낭만적 애국심은 때로 허물 많은 인물들을 터무니없이 미화하는데, 그런 행위의 대표적 인물로 고종을 낙점한다.
복거일은 어떤 기준으로 살펴도 고종은 국왕의 자격이 없는 인물, 극도로 어리석고 이기적이어서 자기 일신의 이익과 안전만을 챙기고, 자기가 다스리는 나라의 앞날엔 마음을 쓰지 않았던 사람이라고 말한다.
“조선이 망하는 과정에서 지도자였던 고종의 용렬한 성품이나 어리석은 행동들을 감추고 현명한 계몽군주로 만들어야 일본의 허물들이 제대로 드러난다는 생각은, 비록 부자연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부도덕하고 어리석고 궁극적으로 모두에게 해롭다.”(102쪽)
이것이 고종에 대한 저자 복거일의 역사적 정의다.
친일파, 변절자 이광수에 대한 새로운 시각
반면에 친일파, 변절자로 낙인찍힌 이광수에 대한 시선은 너그럽고 화해롭다. 동학에 뿌리를 둔 이광수는 일진회 유학생으로 일본에 유학했다가 학비가 끊겨 중도 귀국한다. 우여곡절 끝에 대한제국의 관비 유학생이 되어 다시 일본에 건너가 학업을 계속한다. 메이지학원에서 공부하며 그는 문학에 심취한다.
동학과 일본화 된 서양지식의 세례를 받은 이광수. 그는 문학적으로 식민지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고, 2·8 독립선언, 3·1 만세운동에도 가담한다. 그러던 이광수가 창씨개명을 추진하자 앞장서서 향산광랑(香山光郞)으로 개명하고, 학도병 지원을 권유하는 대열에 앞장선다. 그런 행위는 친일 매국행위의 결정적 단서로 작용한다.
“군사학은 근대 국가의 핵심 기술이다. 우리가 식민지로 전락한 후 다른 기술은 그럭저럭 배울 수 있었지만, 일본인들이 조선 사람들을 군인으로 뽑지 않아 근대 군사 기술은 배울 수 없었다. 이제 그 기회가 온 것이다.”
이광수를 비롯하여 최남선 등의 선각자들은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총을 들고 군대에 나갈 것을 권유하는 대열에 앞장선 것이다. 하지만 민족주의가 광풍으로 불어닥치는 낭만적 애국심의 시대 분위기에선 조선인 젊은이들이 일본군에 들어가 군사지식을 습득함으로써 조선 민족이 얻게 될 실질적 이익 따위가 귀에 들어올 이유가 없다.
악전고투에서 살아남은 조선인 학도지원병들은 전투력이 강했던 일본군에서도 정예였다. 해방 후 이들이 대한민국 창군에 참여했고, 6·25가 나자 야전 지휘관으로 맹활약한다. 인민군 침략 당시 6사단 7연대장으로 ‘춘천대첩’을 이끈 임부택 장군, 함병선 장군, 낙동강 전선을 지킨 송요찬 장군 등등 학도병 출신들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조선의 젊은이들이 일본군에 합류해서 군사 기술을 배워 독립한 조국의 군대를 세우리라는 최남선과 이광수의 비원은 그렇게 실현되었다.
저자 복거일은 이광수가 변절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궁극적 가치로 삼은 조선 민족의 복지를 최적화하기 위한 전략을 현실에 맞춰 거듭 바꾸었을 뿐이며, 급격히 바뀌는 환경에 맞춰 유연하게 전략을 바꾼 것이 외부에선 변절로 비쳤을 따름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대체 이광수가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춘원의 ‘변절’ 너머에 있는 진실을 보지 않으려 애써왔다. 그는 끊임없이 조선 민족을 둘러싼 혹독한 환경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조선 민족은 가장 덜 나쁜 선택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주었다. 아무리 굴욕적이라도, 아무리 괴롭더라도 살아남아야 한다고 그는 역설했다. 그런 호소가 그의 ‘변절’인 것이다.”(198쪽)
낭만적 애국심의 순치를 위하여
낭만적 애국심은 위험하고 통제하기 힘들다. 자연스럽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고 통제하기 힘들다. 한국과 일본 사이의 뒤얽힌 역사는 두 나라에서 늘 거센 낭만적 애국심을 불러일으킨다. 낭만적 애국심을 길들이는 일에서 가장 근본적인 조치는 시민들의 역사적 시각을 넓혀서 인류 전체의 역사를 바라보도록 하는 것이다.
자기 민족이나 국가를 위주로 기술한 역사책들을 보고 역사를 배우면, 어쩔 수없이 역사적 관점이 편협해지고 다른 민족들이나 국가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어느 사회에서나 정치인들은 낭만적 애국심을 이용해서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늘리려 시도한다. 그리고 대개 성공한다. 우리 사회에선 반일 감정이 들끓기 때문에 정치 지도자들은 그것에서 손쉬운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이제 보다 사실적인 역사 서술이 필요하다. 사회 통념에 도전하는 일은 큰 도덕적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이 책은 그러한 사회 통념에 도전하는 또 하나의 쾌거로 기록될 것이다.
저자 복거일은
“복거일은 강인한 의지와 명철한 두뇌와 따뜻한 가슴, 이 세 가지를 함께 지니고 있는 이 시대의 특출한 작가이자 사상가이다.”(이동하)
자유주의자로서 묵묵하게 제 목소리를 내어 어둠을 밝히고, 때로는 천둥 벼락의 글로 시대를 질타하는 회오리를 일으킨다. 어제와 오늘, 내일이 같은 듯 보이지만 전혀 같은 날이 아니듯 그는 나날이 진화하며 살아가고 있다.
1946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대전상고, 서울대 상대를 졸업하다.
1987년 김춘수의 추천으로 『현대문학』 통해 등단하다. 같은 해 『비명(碑銘)을 찾아서 : 경성, 쇼우와 62년』이라는 전작 장편을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내다.
『높은 땅 낮은 이야기』(1988), 『역사 속의 나그네』(1991), 『파란 달 아래』(1992), 『캠프 세네카의 기지촌』(1994) 등 장편 소설과, 시집 『오장원의 가을』(1988), 『나이 들어가는 아내를 위한 자장가』(2001), 『그리운 해왕성』(2019)을 출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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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민족주의는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개인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속성을 지녔다. 민족주의의 이런 속성은 민족주의가 실은 민족과 국가를 낳은 원리에 대한 배반이라는 사실에서 나온다. 민족주의는 가족들을 씨족으로 통합하고, 씨족들을 부족으로 통합하고, 부족들을 민족국가로 통합한 원리와 반대 방향으로 향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민족주의를 경계했다. “민족주의는 소아병이다. 그것은 인류의 홍역이다(Nationalism is an infantile disease. It is the measles of mankind)”라는 아인슈타인의 얘기는 널리 알려졌다.
◇민족주의의 속성이 ‘권력에 대한 욕망’이므로, 민족주의는 외국과의 대결을 먹고 자란다. 외국의 위협이나 전쟁은 민족주의를 극대화하고, 그렇게 극대화된 민족주의는 외국과의 전쟁을 극대화한다. 그리고 전쟁은 시민들의 단결을 필요로 하므로, 전쟁은 정치 지도자들이 대중을 조종하고 통제하는 능력을 늘린다. 자연히, 집권 세력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민족주의를 고취하고 외국에 대해 적대적 태도를 취한다.
차 례
사사(謝辭)
제1장 애국심
제2장 한국의 낭만적 애국심
1. 외족 지배 시기에 대한 외면과 폄하
2. 무력 투쟁의 추앙
3. 문화적 순수성의 추구
4. 낭만적 애국심의 폐해
제3장 동아시아의 근대화
제4장 고종 황제
제5장 이광수
1. 이광수의 지적 자양
2. 이광수의 문학적 공헌
3. 이광수의 정치적 공헌
4. 조선인 지원병 제도
5. 우리 마음속의 춘원
제6장 한일 청구권협정
1. 한일 교섭의 역사
2. 한일 기본조약과 부속 협정
3. 한국 징용공 소송 사건들
4. 대법원 ‘재판 거래’ 의혹
5. 한일 외교 분쟁
6. 외교 분쟁에 대한 한국의 정부의 대응
7. 한국 정부의 군사정보 보호협정 파기
제7장 좋은 이웃이 되는 길
제8장 낭만적 애국심의 순치
후기
참고문헌
색인
충격과 전율이 흐르는 책
책 제목 『낭만적 애국심』은 프랑스 사상가 쥘리앙 방다의 『지식인들의 배반』에 나온 말이다. 이 책은 전체주의와 민족주의의 결합을 경고한 책으로 유명하다. 책의 저자 복거일은 “100년이 지난 지금, 그의 이론을 그대로 현실에 적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것이 지난 암울한 함의들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을 들뜨게 했다”고 책의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전체주의와 민족주의가 결합하여 반일 광란의 시대로 치닫고 있는 한국 사회의 세태를 진단하기 위해 쓰여진 것이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와 이승만학당, 낙성대연구소 소속 연구자들이 펴낸 『반일종족주의』가 한국인들을 마력으로 사로잡고 있는 반일 정서의 뿌리를 캐는 작업이었다면, 복거일의 신작 『낭만적 애국심』은 그 지평을 넓히는 작업이다.
이미 복거일은 2003년에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부제-21세기의 친일문제)라는 문제작을 우리 사회에 내놓은 바 있다. 이 책은 오늘날 친일파로 단죄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일본의 식민통치에 대한 변론서나 다름없었다. 즉, 일본의 식민통치를 민족주의 사관에 젖어 “가혹하고 혹독했다”는 식의 비난이 아니라,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종합적 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그는 일본 식민통치 시기를 인구변화와 경제성장률로 분석한 후 영국 역사학자 리처드 스토리(Richard Storrey)의 견해를 통해 자신의 소신을 밝힌다. “조선에서의 일본의 통치는 조선에 무척 많은 물질적 혜택을 주었고, 분명히 그것은 이전 왕조 정부의 통치보다 효율적이었고 어떤 면들에선 훨씬 덜 자의적이었고 덜 가혹했다”고.
복거일의 신작 『낭만적 애국심』은 충격과 전율이 흐르는 책이다. 우리가 사실과 진실로 알고 있었던 일본 식민통치 시기의 잔상들이 여지없이 부서지고 깨지고 박살이 난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과 진실을 우리에게 속삭인다.
저자 복거일은 한국의 지성인이자 작가로서, 사상가로서 한국 사회에서 들끓고 있는 낭만적 애국심을 지극히 우려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애국심과 민족주의는 비슷한 개념이지만, 많이 다르다. 애국심은 조국에 대해 느씨는 애착, 사랑, 헌신 같은 감정들과 그런 감정들을 공유한 사람과의 연대감으로 정의된다. 반면에 민족주의는 특정 민족국가의 이익을, 특히 영토에 대한 주권을 확보하는 것을 떠받치기 위한 이념이나 운동을 뜻한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애국심은 감정이고, 민족주의는 이념이다.
민족주의의 속성은 '권력에 대한 욕망'
사람들 사이의 차이들을 부각시키고 개인들에게 자기 민족과의 동일시를 강요하므로, 민족주의는 사람을 분열시키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속성을 지녔다. 민족주의의 속성은 한 마디로 ‘권력에 대한 욕망’이다. 이러한 민족주의는 외국과의 대결을 먹고 자란다. 저자 복거일은 한국인들의 민족주의를 부추긴 삼별초의 항쟁, 일본에 대한 무장투쟁을 비판한다. 조선 독립군처럼 비정규전을 펴는 군대는 활동 근거가 있어야 보급을 받고 인원을 보충할 수 있는데, 독립운동을 하자 일본군은 그런 근거를 없애버렸다. 만주의 조선인들은 혹독하고 참혹한 화를 입었고, 활동 근거지가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우리 사회는 모두 무장투쟁을 추앙하고 현실적 대응을 주장한 사람들을 폄하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복거일은 분연히 외친다.
이러한 낭만적 애국심으로 가리워지고 뒤틀린 식민지 시기를 들여다 보면서 복거일은 세 가지를 비판한다.
첫째, 일본의 잘못을 크게 부풀리려는 시도다. 일본이 침략하지 않았다면 우리도 스스로 근대화했을 것인데, 일본이 식민지배를 하는 바람에 그 기회가 사라졌다는 식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둘째, 남의 식민지가 된 조선이 필연적으로 겪어야 했던 구통과 굴욕을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모두 떠넘기는 경우다. 을사조약에 서명한 대신들을 ‘을사 오적’이라고 매도하는 것이 그 대표에 해당한다.
셋째, 낭만적 애국심이 일본에 대한 반감이 되어 우리와 일본 사이의 관계를 어렵게 하는 경우다. 한일청구권협정 등을 제대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복거일은 우리 사회에서 일고 있는 고종 계몽군주 설을 사정없이 비판한다. 낭만적 애국심은 때로 허물 많은 인물들을 터무니없이 미화하는데, 그런 행위의 대표적 인물로 고종을 낙점한다.
복거일은 어떤 기준으로 살펴도 고종은 국왕의 자격이 없는 인물, 극도로 어리석고 이기적이어서 자기 일신의 이익과 안전만을 챙기고, 자기가 다스리는 나라의 앞날엔 마음을 쓰지 않았던 사람이라고 말한다.
“조선이 망하는 과정에서 지도자였던 고종의 용렬한 성품이나 어리석은 행동들을 감추고 현명한 계몽군주로 만들어야 일본의 허물들이 제대로 드러난다는 생각은, 비록 부자연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부도덕하고 어리석고 궁극적으로 모두에게 해롭다.”(102쪽)
이것이 고종에 대한 저자 복거일의 역사적 정의다.
친일파, 변절자 이광수에 대한 새로운 시각
반면에 친일파, 변절자로 낙인찍힌 이광수에 대한 시선은 너그럽고 화해롭다. 동학에 뿌리를 둔 이광수는 일진회 유학생으로 일본에 유학했다가 학비가 끊겨 중도 귀국한다. 우여곡절 끝에 대한제국의 관비 유학생이 되어 다시 일본에 건너가 학업을 계속한다. 메이지학원에서 공부하며 그는 문학에 심취한다.
동학과 일본화 된 서양지식의 세례를 받은 이광수. 그는 문학적으로 식민지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고, 2·8 독립선언, 3·1 만세운동에도 가담한다. 그러던 이광수가 창씨개명을 추진하자 앞장서서 향산광랑(香山光郞)으로 개명하고, 학도병 지원을 권유하는 대열에 앞장선다. 그런 행위는 친일 매국행위의 결정적 단서로 작용한다.
“군사학은 근대 국가의 핵심 기술이다. 우리가 식민지로 전락한 후 다른 기술은 그럭저럭 배울 수 있었지만, 일본인들이 조선 사람들을 군인으로 뽑지 않아 근대 군사 기술은 배울 수 없었다. 이제 그 기회가 온 것이다.”
이광수를 비롯하여 최남선 등의 선각자들은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총을 들고 군대에 나갈 것을 권유하는 대열에 앞장선 것이다. 하지만 민족주의가 광풍으로 불어닥치는 낭만적 애국심의 시대 분위기에선 조선인 젊은이들이 일본군에 들어가 군사지식을 습득함으로써 조선 민족이 얻게 될 실질적 이익 따위가 귀에 들어올 이유가 없다.
악전고투에서 살아남은 조선인 학도지원병들은 전투력이 강했던 일본군에서도 정예였다. 해방 후 이들이 대한민국 창군에 참여했고, 6·25가 나자 야전 지휘관으로 맹활약한다. 인민군 침략 당시 6사단 7연대장으로 ‘춘천대첩’을 이끈 임부택 장군, 함병선 장군, 낙동강 전선을 지킨 송요찬 장군 등등 학도병 출신들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조선의 젊은이들이 일본군에 합류해서 군사 기술을 배워 독립한 조국의 군대를 세우리라는 최남선과 이광수의 비원은 그렇게 실현되었다.
저자 복거일은 이광수가 변절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궁극적 가치로 삼은 조선 민족의 복지를 최적화하기 위한 전략을 현실에 맞춰 거듭 바꾸었을 뿐이며, 급격히 바뀌는 환경에 맞춰 유연하게 전략을 바꾼 것이 외부에선 변절로 비쳤을 따름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대체 이광수가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춘원의 ‘변절’ 너머에 있는 진실을 보지 않으려 애써왔다. 그는 끊임없이 조선 민족을 둘러싼 혹독한 환경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조선 민족은 가장 덜 나쁜 선택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주었다. 아무리 굴욕적이라도, 아무리 괴롭더라도 살아남아야 한다고 그는 역설했다. 그런 호소가 그의 ‘변절’인 것이다.”(198쪽)
낭만적 애국심의 순치를 위하여
낭만적 애국심은 위험하고 통제하기 힘들다. 자연스럽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고 통제하기 힘들다. 한국과 일본 사이의 뒤얽힌 역사는 두 나라에서 늘 거센 낭만적 애국심을 불러일으킨다. 낭만적 애국심을 길들이는 일에서 가장 근본적인 조치는 시민들의 역사적 시각을 넓혀서 인류 전체의 역사를 바라보도록 하는 것이다.
자기 민족이나 국가를 위주로 기술한 역사책들을 보고 역사를 배우면, 어쩔 수없이 역사적 관점이 편협해지고 다른 민족들이나 국가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어느 사회에서나 정치인들은 낭만적 애국심을 이용해서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늘리려 시도한다. 그리고 대개 성공한다. 우리 사회에선 반일 감정이 들끓기 때문에 정치 지도자들은 그것에서 손쉬운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이제 보다 사실적인 역사 서술이 필요하다. 사회 통념에 도전하는 일은 큰 도덕적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이 책은 그러한 사회 통념에 도전하는 또 하나의 쾌거로 기록될 것이다.
저자 복거일은
“복거일은 강인한 의지와 명철한 두뇌와 따뜻한 가슴, 이 세 가지를 함께 지니고 있는 이 시대의 특출한 작가이자 사상가이다.”(이동하)
자유주의자로서 묵묵하게 제 목소리를 내어 어둠을 밝히고, 때로는 천둥 벼락의 글로 시대를 질타하는 회오리를 일으킨다. 어제와 오늘, 내일이 같은 듯 보이지만 전혀 같은 날이 아니듯 그는 나날이 진화하며 살아가고 있다.
1946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대전상고, 서울대 상대를 졸업하다.
1987년 김춘수의 추천으로 『현대문학』 통해 등단하다. 같은 해 『비명(碑銘)을 찾아서 : 경성, 쇼우와 62년』이라는 전작 장편을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내다.
『높은 땅 낮은 이야기』(1988), 『역사 속의 나그네』(1991), 『파란 달 아래』(1992), 『캠프 세네카의 기지촌』(1994) 등 장편 소설과, 시집 『오장원의 가을』(1988), 『나이 들어가는 아내를 위한 자장가』(2001), 『그리운 해왕성』(2019)을 출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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