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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에크 저 '노예의 길' 역자 서문 중

김종상
2019-05-02
조회수 1579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된다.

"현재 한국에서는 다수결 만능주의, 행정편의주의 등에 따라 법의 지배가 확보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 속에 잠재된 전체주의와 사회주의가 사회보장, 안전 등의 이름 아래 남의 비용으로 나의 편익을 누리려는 경향성으로 드러나고 있지는 않은가?"

"현재 우리는 이미 이런 안정을 추구하다가 영국병, 독일병 등으로 고생한 유럽 여러 나라들의 실패를 답습하고 있지는 않은가?"

사실 우리는 지금 1998년 외환위기 때 구조조정을 경험한 후 '사회안전망' 구축이 그럴듯한 명분이 되었고, 이로 인해 공공연금 등 사회보장에 대한 요구는 높다.

그러나 사회안전망의 구축은 돈이 들고, 이는 결국 현재 혹은 미래세대의 개인들이 당연히 자유롭게 써야 할 돈을 세금이나 국채의 형태로 '진정한 동의'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가져오지 않고서는 감당할 수 없다.

더구나 이런 정책으로부터 혜택받는 계층들이 이를 권리로 여기고, 각 계층은 이를 경쟁적으로 더 많이 요구하며, 정치권에서 이런 정책의 파탄을 다음 정권으로 떠넘기면서 혜택을 주고 표를 사기 시작하면 이런 정책이 초래할 위험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과연 우리는 이런 위험한 길로부터 안전한가?"

하이에크는 직업과 소득의 보장을 외치는 목소리가 커져서 "임금과 가격을 보장하려는 정책이 시행될수록 (가격변화에 따른 끊임없는 조정기능이 마비되어) 고용과 생산이 급변하게 되므로" 경제와 빈곤계층의 삶은 더 불안정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안정을 추구하는 전체주의 계획경제 사회에서 젊은이들의 직업과 위험에 대한 가치관과 태도가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한 그의 설명은 마치 현재 한국사회의 한 단면을 설명하는 것 같아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사회주의'를 단지 이상향으로 수긍하는 한국의 모든 사람들, 특히 정치인과 지식인들은 이를 실현하기 위한 가능한 수단(사유재산제의 철폐와 이윤의 철폐, 국가 혹은 세계단위의 경제계획 추구)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자유의 길인지 아니면 노예의 길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사회주의가 아니라 이것이 완화된 형태인 '복지국가'를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 2015년 11월 역자 김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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